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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천 화수동 ‘민들레 국수집’

감칠맛.오늘 2008. 1. 26. 23:10




인천의 달동네인 동구 화수동 화도고개 꼭대기에 ‘민들레국수집’이 있다. 동화로 유명해진 괭이부리마을이 바로 옆동네다. 서영남 베드로씨(55)가 2003년 노숙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문을 연 민들레국수집도 매스컴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서씨는 2005년 KBS ‘인간극장’을 통해 소개된 데 이어 2006년 경향신문에 ‘행복 한그릇’이라는 칼럼을 연재했고, ‘사랑이 꽃피는 민들레 국수집’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지난 20일 일요일 오전, 다시 찾아간 민들레국수집은 여전했다. 3평으로 시작한 공간이 6평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비좁고 군색해보였다. 6명이면 꽉 차던 식탁은 지금은 한꺼번에 열명이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다. 점심 전인데도 ‘손님’들은 계속 찾아왔다. 서씨는 여전히 얼굴 가득 넉넉하고 인자한 미소를 띠고 손님을 맞고 있었다.

국수집 손님들은 대부분 노숙을 하거나 쪽방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하루 평균 120여명이 이곳을 찾는다. 서씨는 이들을 ‘VIP’라고 부른다. “하느님이 보낸 최고로 중요한 손님”이라며 극진히 모시고 섬긴다. 서씨는 수첩에 이들의 과거와 현재 처지, 식성까지 꼼꼼히 메모해두고 있다.

서씨는 25년 동안 가톨릭 수사 생활을 했다. 주로 전국의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장기수들을 도왔다. 2001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하느님의 뜻을 전하겠다는 생각으로 환속했다. 지금은 누구나 원하는 만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무료식당’인 민들레국수집과 느슨한 공동체로서 노숙자들의 자립을 도와주는 ‘민들레의 집’, 그리고 노숙자들이 몸을 씻고 낮잠을 잘 수 있는 ‘민들레 쉼터’를 운영한다. 민들레국수집이 쉬는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청송교도소, 목포교도소 등으로 자매상담을 다니며 재소자들을 돕는다.

그는 2002년 오랫동안 재소자를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해온 강베로니카씨(50)와 결혼, 그녀의 딸 이아롱 모니카씨(25)까지 세 식구가 가정을 이뤘다. 아내와 딸은 서씨의 가장 큰 후원자다. 아내는 동인천역 지하상가에서 옷가게를 한다. 딸은 요즘 부모가 없거나 버려지는 아이들을 위해 민들레공부방을 준비하고 있다. 재소자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일도 모녀의 몫이다.

민들레국수집은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간판은 국수집이지만, 그곳에 국수는 없다. 처음에는 국수를 제공했지만 며칠씩 굶은 사람들에게 국수는 도움이 되지 않아 밥으로 바꿨다. 손님들이 별미로 국수를 찾을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식당 이름은 그대로 뒀다.

누구나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밥도 반찬도 푸짐하다. 이날 식사에는 무국, 게찌개, 돼지고기김치볶음, 매운닭발조림, 김, 시금치나물, 콩나물, 고추장아찌, 멸치볶음, 계란 프라이가 나왔다. 후식으로 귤이 준비됐다. 닭발은 화수자유시장에서 생선 좌판을 하는 아주머니가 선물했고 보살할머니는 팥죽을 끓여왔다. 귤은 제주 서귀포의 후원자가 보내왔다.

서씨는 항상 손님들이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배려한다. 종교를 강요하거나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등의 잔소리도 하지 않는다. 술 취한 젊은이도 찾아왔지만 서씨는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더욱 친절하게 맞아줬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손님에게 서씨는 담배를 한개비씩 나눠준다.

봉사자들도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떠나고 싶을 때 마음 편히 떠나면 된다. 이날도 낯익은 얼굴들이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설거지를 했다. 천주교 인천교구 송림동본당에 다니는 최정옥 바울라 할머니(73)와 이명희 아가다 할머니(68)는 4년째 식당에서 봉사하고 있다. 최할머니는 손녀를 키우며 매달 35만원의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부천에 사는 오재영씨(40)도 오래된 봉사자다. 서울에서 이날 처음 봉사하러 왔다는 직장인 윤기봉씨(53)는 설거지를 맡았다.

민들레국수집에서는 식사만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다. 자립의 뜻이 있는 노숙자에게는 방을 얻어 주고, 생필품과 옷가지까지 마련해 준다. 민들레의 집은 ‘홀로’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느슨한 형태의 공동체로 현재 20여명의 식구들이 월세방 등에서 생활하고 있다. 오랜 노숙생활로 여럿이 모여 살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연수구 옥련동 민들레의 집은 방 세개짜리 독채로 바다가 훤히 보이는 전망좋은 집이다. 국수집이 있는 화수동 주변에도 6~7개의 민들레의 집이 있다.

옥련동 집에 사는 대성씨는 민들레국수집의 첫손님이었다. 심각한 알코올중독과 노숙으로 인해 병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담배와 술을 끊고 새사람이 됐다. 4년 동안 노숙을 했던 윤기성씨(29)는 민들레의 집에서 생활하며 운전면허를 따 일산의 물류회사에 취직했다. 아버지와 함께 노숙을 하다가 민들레의 집에 들어왔던 성일이는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생이 됐다. 성일이 아버지는 막노동을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요즘 일거리가 없어 걱정이다. 이날 대성씨가 쌀 한포대를 가져다 줬다.

그렇다고 노숙자들이 쉽게 정착을 하는 것은 아니다. 보증금을 빼서 달아나는 사람도 많다. 여전히 알코올이나 게임에 중독돼 있는 식구도 있다. 지금도 3명이 알코올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 출소자들도 다시 교도소에 들어가는 일이 허다하다. “스스로 노력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는 한번 실패하면 재기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이 용기를 내는 날이 올 때까지 믿고 기다리는 겁니다.”

서씨는 민들레국수집을 열면서 네가지를 다짐했다. 정부 예산을 받지 않고, 돈을 얻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고, 부자들의 생색내는 돈은 받지 않고, 후원회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민들레국수집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면서 도움을 주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거절한 것도 이런 다짐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금은 쌀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봉사자, 후원자가 줄을 섰다. 요즘은 민들레 식구들이 먹고 남는 쌀과 반찬을 이웃의 독거노인이나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어려운 40가구 정도의 이웃에게 나누어 준다. 지난 연말에는 누군가 몰래 김장용 배추와 무를 집 앞에 내려놓고 갔다. 며칠 전 어떤 이는 돼지고기를 600근이나 보내왔다. 매주 한 끼 점심을 굶고 달걀을 사오는 사람도 있다. 돈을 보내주는 익명의 후원자도 많다. 청송교도소에서 17년째 복역중인 박꼴베씨(세례명·47)는 교도소에서 받는 작업수당과 영치금을 보내와(경향신문 2006년 8월16일자) 화제가 됐다.

이날도 서울 번호판을 단 승용차 한대가 멈췄다. 20대의 젊은이가 인사만 꾸벅 하고는 문 앞에 20㎏짜리 쌀 한포대를 놓고 돌아섰다. 경기 광명시에서 승합차를 타고 온 젊은 부부는 귤 상자를 들여놓았다. 붙잡고 몇가지 물어봤지만 모두들 미소만 남긴 채 도망치듯 차를 몰고 사라졌다.

서씨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만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진심으로 따뜻하게 대하는 마음이 한끼 식사보다 더 소중한 ‘밥’이라고 한다.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는 일은 아주 작은 일입니다. 큰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더 가지려는 사람들보다 더 나누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우리가 사는 이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사랑이 꽃피는 민들레국수집, 사랑이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나가는 밥집이다.

출처 : 여행을 찾는 사람들[씨밀레]
글쓴이 : 넌 또다른나[이태경] 원글보기
메모 : 내가 이런곳에서 봉사하구 싶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