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임....하나

서러운 사이....

감칠맛.오늘 2011. 8. 12. 00:34

울 엄니는  올 팔순하고도 육반이시다.

울 엄니는  다정다감하고는 아주 거리가 먼 양반이다.

예외가 하나 있다면 그건 장남인 오빠다.

그 연세에  모든 어르신들이 그러했듯이

어엄니 세대만해도 남아선호사상이 골수에 박힌 시대였고 .....

하다못해 "남존여비" "아들 딸"  "1남 2녀" "아들손자며느리" 이런 글귀만 봐도 여잔 맨 꽁찌였다 .

허긴 내가 알고있는 가장 맹꽁이같은 여자가 어느날 이렇게 말해서 다시 돌아보게만든 말은

"하나님이 변솟간의 구데기를 만들고나서 맨 나중에 만든게 여자"라는 말이었다.

이날까지 살아 오면서 내가 들은 최악의 말 ......

단 하나 여자가 앞에 오는 유일무이한 단어는 "여필종부"라는 단어외엔 없는 걸로 안다.

 

가방 끈 짧은 내가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우린 2남4녀  여섯 남매였는데 엄니는 오빠를 지아비보다 더 떠 받드는것 같았다.

어린 단순한 계산되지 않은 눈으로 본 내가 정확히 봤을것이다.

도시락 바닥에 맨날 계란후라이 하나깔고 그위에 밥얹은 걸 내가 아는데.... 

엄니는 이제와선 이러신다

"남들은 아들 딸 구별하는데 난 안그랬어"하시며 의기양양해 하셨다.

당신이 어캐해서 우릴 서럽게 만들었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오죽해야 내 젤루 친한 친구가 중딩때부터 수시로 드나들었는디

울  엄니가 계몬줄 알았을꼬.....ㅉㅉ

 

이친구는 진짜루 즈그 엄니가 초딩 5학년되는 해에  

아래로 두 동생을 두고 병으로 바삐 서둘러 가셨다.

그 친구 아바이는 처녀 장개를 가셔서 두 동생을 봤다.

나는 고딩핵교를 졸업하고도 십여년도 더 지나서 우연히

그애 엄니가 계모라는 사실을  다른 동창으로부터 전해듣고 

너무 황당했던 기억이 있었다

사실 그 때 그 야글 전해듣고 난 심한 부끄러움에 수치심 마저 들었었다.

난 애를 친군줄 알았는데 이아이는 날 친구로 안여겼구나 하는 생각에

아주 괴로웠었다.

그리고 10여년이 흐르던 어느 추석때 친정에 다니러온 야한테서 연락이 왔다.

그날 친구의 이복 형제들간의 어떤 불거진 문제로인해 이 친구는 울었다.

밖으로 나와  차속에서 울고있는 친구를 위로하다가

나도 울다가 친구에게 나 참 서운했다고 그랬더니  감 잡았는지....

이 친구 하는 말이 "미안해 난 너를 가만히 보니까 니 엄마가 참 차가운게

아 얘도 엄마가 계모구나 하고 내가 언젠가 울면서

"영수가 울엄마 계모야 "하고 고백할줄 알았다고 그러면 자기도 "울엄마도 계모야 "하고

목놓아 울려고 했는데 아무리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오길 기다려도 그 말을 안하더라고 하면서 

자기는 그 말을 왜 못했냐면 내가 그말을 듣고 자길 다르게 볼까봐서 못했다고 했다.

이 친구가 울 엄니가 계몬줄 알았다는 그말에  우린 울다가 웃다가 그랬다.

 

울 엄니가 우릴 여자들을 딸들을 우습게 알아서

난 나 스스로 "난 비싼여자야" 하는 오기가 발동하게 만들었다.

또 나 스스롤 사랑하지 않으면 안됀다는 것과 함께....

울 엄니는 어캐된게 어쩌다 친정이라도가면 신발벗고 마루로 올라서기도 전에

 "야 무좀 닦아서 무국좀 끓여..."

"야 설거지좀 해..."

완존히 부려 먹으려고만 드셨다.

당신 며늘은 모하라고.....

그러면 내입에선 "난 비싼 여자야...내손은 비싸..."라고 한다.

울랑은 나보고 "꼴통" "고인돌" "희귀종" "천연기념물" 이라고 하지만 .....

그건 내 아픔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울랑은 내가 단지 여자로 태어 났다는 이유로

얼마니 많은 날들을 벼갯머릴 적시었는가를.....

울랑 역시 아들이고 남자니 알리가 있나.....

내가 이러구 컸다우 .....

나 알고보면 불쌍한 뇨자에요....흑흑....

잠안오는 밤 심심해서리.......